에이단 가렛:(가엾고 어리석게? 평소라면 숭고한 용사의 의무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에 화가 났겠지만, 문득 이곳에 오기 직전 들었던 시종들의 대화에서 들었던 불쌍하다는 말이 머리를 스칩니다. 분노 이전에 궁금증이 앞서, 꾹 참고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집니다.) 용사의 의무는 숭고한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시건대 감히 제국의 용사를 동정합니까? 어째서?
사제: 숭고? 큭, 크하하, 하하!!! (어딘가 단단히 미쳐버린 것 처럼 배를 잡고 떠나갈 듯이 웃다가 뚝 그친다.) 저희는, 위대하신 '그분들' 앞에 다만 하찮은 존재임을 깨달은 한낱 신자일 뿐.
그런 모습이 너무나도 우습군요, 우스워.....!
에이단 가렛:(위대하신, 그분들... 정황상 마왕을 칭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마왕은 알려진 바로는 마왕 빅토르, 그 자 뿐입니다. 왜 복수로 칭하는 것일까요? 사제와의 대화로 의문만 더해집니다. 그러나 호기심도 계속되는 모욕에 치미는 화를 누르기는 역부족입니다. 드디어 화가 난 얼굴로 입을 엽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까? 나는 사악한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요. 당신에게 나를 그렇게 비웃을 자격이 있습니까?
사제: 크하하! 알지요,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리도 우스운 겁니다! 자, 모든 것이 결국... 큭큭... 운명의 농간입니다. (당신의 물음에 정확한 답도 없이 제멋대로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다.)
가짜 사제는 당신의 등을 치료해주고서 돌아섭니다.
KP:에이단, 체력 3 회복
사제: 대륙의 끝으로 가시면 비로소 알게 되겠지요.. 제국의 용사님.
그 말을 끝으로 웃음소리와 함께 자박자박 멀어져가는 발자국.
아무 일 없던 듯 사라집니다.
기분 탓일까요… 눈을 돌리면 숲속의 어둠은 한 겹 더 짙어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에이단 가렛:(말하는 건 얄미운데 치료는 왜 해주는 거지...? 의아해져선 등을 매만집니다. 사제는 끝까지 의문만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가 용사의 일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멈출 생각도 해야 할텐데요. 그에겐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운명의 농간... 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을 위해 살아온 자신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모욕입니다.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리곤 주위를 둘러봅니다.)
미친 것 같아보였던 그들에 의해서도 용사의 마음은 헤집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잡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주위를 둘러보면, 마물들의 핏자국이 눌러붙은 풀들, 그리고 마왕성으로 향하는 거친 길만이 보입니다.
에이단 가렛:(마왕성...... 꿈에서나 그리던, 이라고 표현하면 어감이 좀 이상할까요. 그간 보내온 인고의 시간들이 드디어 자신을 마왕성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악명에 걸맞게 마왕성으로 향하는 길에도 죽음이 드리운 듯 합니다. 그렇지만 용사는 이런 일에 겁먹지 않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죠. 마음을 다잡고, 검을 괜히 고쳐매고 걸음을 옮깁니다.)
마왕에게 가는 길을 필사의 각오로 막기라도 하듯 괴수들은 발길을 뗄 때마다 달려들었지만,
당신은 어렵사리,
그러나 용맹하게 그들을 처치하고 빛나는 핏물로 그득한 비린 명예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습니다.
대륙의 끝으로 가면 갈수록 땅은 척박해지고, 바람은 거세지고, 발걸음을 떼기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날은 결국에 다가오고야 맙니다.
눈을 들면, 저 멀리 희끗하니 보이는 검은 성채.
잠깐 걸음을 멈춥니다.
저것이, 마왕이 산다는 세계의 끝 죽음의 성.
에이단 가렛:(바람소리가 귀끝을 때립니다. 검은 성채가 드디어 보입니다. 마왕의 성. 생이 스러지는 곳... 그간 이야기로만 들어오던 곳입니다. 땅 자체가 자신을 거부하는 듯 나아갈수록 여정은 거칠어졌지만 단 한 번도 뒷걸음질 치는 일 없이 이곳까지 다다랐습니다. 희미한 의문들은 고행과도 같은 여행길에 부식되어 이미 마음 한 구석에 묻힌 지 오래입니다. 그 자리는 열망으로 가득찼습니다. 드디어, 사명을 다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태어났고, 그리 행할 것임을 굳게 믿고 다시 한 번 나아갑니다.)
숨을 삼킵니다.
여태껏 겪어본 적 없는 지독한 중력에 짓눌리는 듯한 힘.
세상의 끝에 선다는 것은 이토록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던 걸까요.
마음 속으로 두려움이 찾아들 법도 했지만,
당신의 사명과 굳센 의지만큼은 짓눌리지 않았습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죽음이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경한 감정.
그러나 당신은 용사였지요.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랑도, 보살핌도, 관심도 받아왔습니다.
무엇이 당신에게 더 두려울까요,
축복해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이 압도적인 적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정의의 이름으로, 당신은, 악을 처단해야만 하지 않나요.
용사 에이단 가렛은, 숨을 들이킵니다.
문득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보면,
8 마리의 마물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점점 좁혀옵니다.
포위해옵니다!
KP:전투 페이즈.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편의상 한 굴림 당 두 마리로 취급합니다.
에이단, 검을 들어주세요.
에이단 가렛:(마왕성은 제 몸을 짓누름과 동시에 마물에게는 힘을 주는 것만 같습니다. 기세등등하게 저를 압박해오는 마물들을 보고, 의외로 차분한 눈빛으로 심호흡을 한 번 합니다. 사소한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의 앞에 놓인 의무가 찌르고, 베어넘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가다듬고 검을 휘두릅니다. 언제나 그랬듯, 굳건하게, 날카롭게.)
아론다이트
기준치:
70/35/14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피해:
5
그 누가 용사의 모습을 보았다면 전설에 길이 남을 이야기를 남겼을 법한, 그야말로 용사다운 모습.
하지만... 정말, 아주 조금의 차이로 검은 마물을 베어내지 못 했습니다.
KP:
rolling 1d100<50
(
4
)
=
1 Success
rolling 1d100<50
(
68
)
=
0 Successes
rolling 1d100<50
(
9
)
=
1 Success
rolling 1d100<50
(
73
)
=
0 Successes
여덟 마리 중, 절반이 공격할 틈을 재고 있다가 검이 휘둘러지자 마자 달려옵니다.
KP:회피 혹은 반격
에이단 가렛:(비껴간 공격에 아쉬워할 틈도 없이, 발톱을 휘둘러오는 마물들에 이를 악뭅니다. 몸을 피할 새도 없어 무작정 검을 회수하고 달려오는 마물들의 방향으로 무작정 내리긋습니다.)
아론다이트
기준치:
70/35/14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7
아까의 실수를 무마하듯 무작정 내리긋는 듯한 움직임이 더 효과가 좋았나봅니다.
네 마리가 손 쓸 틈도 없이 깨갱거리며 전장에서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칩니다.
KP:에이단 턴
에이단 가렛:(마찬가지로 한 끗 차이로 마물들에게서 몸을 건지고 숨을 몰아쉽니다. 심장이 피를 뿜어내는 소리가 귓가에 둥둥 울립니다. 기세를 빌어 다시 한 번 크게 베어냅니다.)
아론다이트
기준치:
70/35/14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8
KP:
rolling 1d100<52
(
97
)
=
0 Successes
rolling 1d100<52
(
88
)
=
0 Successes
드디어 감을 찾았나요.
큰 호선을 그리고, 검신이 번쩍이고, 마물들은 두 동강이 납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또 다시 벗어났습니다.
에이단 가렛:(마물들의 시체 사이에 우뚝 서서 숨을 고릅니다. 뒷덜미를 문지르자 식은땀이 묻어나옵니다. 수많은 마물을 죽이며 전진했는데도, 죽음의 곁을 스치는 감각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무너질수는 없는 일이지만요. 마물의 시체를 곁눈질하며 나아갑니다.)
처참하게 두 쪽으로 나뉘어진 마물들과 그것들의 피를 밟고 다시금 나아갑니다.
용사의 의지는 고작 마물들 앞에서 꺾일 만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마왕을 직접 대면하고 나서도 같은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직은 모르는 일입니다. 마왕성의 문에도 닿지 못 했으니까요.
....
전부 물리친 줄 알았는데.
이제 끝이 보일 것 같았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박쥐처럼 생긴 마물들이 다시 몰아칩니다.
시커먼 폭풍처럼, 마왕의 손아귀처럼.
머릿수를 얼추 세어보면 20 마리입니다.
아까보다 더 버겁게 느껴지는 건 지친 탓의 착각일까요.
에이단 가렛:(베고, 찌르고, 내리긋고, 혹사당한 손목이 아립니다. 손끝이 무딘 감각에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폅니다. 지쳤냐고요? 그럴 리 없습니다. 용사는 그래선 안됩니다. 용사는... 질 수 없습니다. 전의를 가다듬습니다. 할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되뇌고 아론다이트의 손잡이를 꽉 쥡니다. 휘두르는 동작이 깔끔합니다.)
아론다이트
기준치:
70/35/14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8
아론다이트의 날은 절대로 무뎌지지도, 날이 빠지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벨 때 마다 더욱 날카롭게 찌를 수 있는 각도를 찾아내고, 그것을 실행하고..
마왕이 만약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검은 마물들의 떼 사이에서 화려한 검무를 추는 것 같아보일지도요.
KP:
rolling 1d100<52
(
62
)
=
0 Successes
rolling 1d100<52
(
73
)
=
0 Successes
rolling 1d100<52
(
9
)
=
1 Success
rolling 1d100<52
(
42
)
=
1 Success
수는 압도적으로 그들이 우세했지만
그렇기에 한꺼번에 베어내는 것엔 어찌할 방도가 없었을 겁니다.
폭풍의 절반이 사라져, 시야가 걷힙니다.
마왕성.
눈 앞에 보이는 마왕성에 닿기 위해서,
KP:
rolling 1d100<50
(
89
)
=
0 Successes
rolling 1d100<50
(
47
)
=
1 Success
다섯 마리가 한 번에 무리지어 달려듭니다.
KP:반격 혹은 회피 판정
에이단 가렛:(마왕성이 드러납니다. 제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원망하기엔 눈 앞의 적이 너무 매섭습니다. 공격의 기로를 끊듯 칼을 휘두르면서도 마왕성을 노려봅니다. 용사는 나태해질 수 없습니다. 의지를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면 운명도 그의 손을 들어줄지도 모릅니다. 그저 시도해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겠지요.)
아론다이트
기준치:
70/35/14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5
손을 한 시라도 게을리 하면 순식간에 마왕에게 심장을 찔린다는 말을 몇 번이고 들어왔던가요.
황궁에서 들었던 잔소리가 뇌 어딘가에서 아득하게 떠오릅니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조금 힘들지만 안락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리 검을 휘두르면, 성공적으로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 같습니다.
휘청이고, 진열이 무너졌지만 가까스로 버텨냈는지 한 차례 키에엑, 하고 울며 돌진합니다.
KP:에이단 턴
에이단 가렛:(숨이 턱 끝까지 차오릅니다. 인상을 찌푸려 다시 적에게 흐린 시야의 초점을 맞춥니다. 익숙한 전투의 흥분에 몸을 맡기고 검을 휘두릅니다. 이것이 마지막이기만을 바라며...)
아론다이트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피해:
2
누구의 마지막을 바랬나요?
어쩌면, 자신의 안식은 아니였는지.
KP:
rolling 1d100<50
(
48
)
=
1 Success
에이단, 회피 혹은 반격
에이단 가렛:(힘이 풀릴 것만 같습니다. 곧게 세워지던 검날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오로지 전진 뿐입니다. 무너질 순 없기에, 다시 한 번 검을 내리긋습니다.)
아론다이트
기준치:
70/35/14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6
결국 마지막은 그들에게 고해졌습니다.
벌레 떼 같던 마물들이 중력이 이끌린 것 처럼 바닥에 처박히자 앞이 보입니다.
KP:관찰 판정
에이단 가렛:(죽음은 한 번 더 용사를 비껴갔습니다. 운명의 여신은 사제의 말처럼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일까요? 끝인가 싶다가도, 결국 그의 손을 들어주는 행운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농락당하는 기분에 불안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신보다 거대한 것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불필요하고 주제넘은 짓입니다. 한 치 앞밖에 볼 수 없는 자신은 한 치 앞까지만 생각하는 것이 어울리는 일입니다. 어느새 트인 시야에 앞을 바라봅니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순간, 한 박자 늦게 추락한 박쥐같은 마물의 피에 시야가 잠시 가려졌다가, 주륵 흘러내리며 가까스로 눈을 떠봅니다.
눈을... 떴나요? 어쩐지 눈 앞이 검다 싶으면,
그것들입니다. 마물들이요. 질리지도 않고 다시 새로운 군단이 용사의 발길을 따라왔습니다.
사악한 마왕은 용사를 그냥 둘 생각은 없는 것 같았보입니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온통 시야를 뒤덮으며 포위해오는 그것들은..
당신을 물어뜯고, 찌르고, 칼 같은 날개깃으로 베고.
끝이 없이 들이닥칩니다.
비린 피냄새와 몰려오는 숨찬 두려움,
지긋지긋한 살육을 자행하며 검을 휘두릅니다. 죽는 순간까지 포기하긴 이릅니다.
키에엑―! 마물이 비명을 지르고, 그럼에도 다시금 달려들어 당신을 물어뜯기 시작하고, 팔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찔한 고통이 두 눈을 감깁니다.
아, 더이상은, 더이상은……
당신의 목줄기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마물이 시야에 가득 들어차는 것을 마지막으로,
당신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눈을 뜹니다.
당신은 침대에 눕혀져 있습니다.
천장이 희고 눈부신 빛으로 일렁입니다.
붉은 햇빛이 어딘가에서 비쳐 들어오고…. 안락합니다.
마치 돌아온 것처럼요.
에이단 가렛:(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등 뒤가 푹신한 감각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따스한 감각... 용사는 단 꿈을 꾸듯 제 감각기관이 전해오는 자극을 즐깁니다. 일어나면 또 식사를 하고, 제게 다정한 말을 건네오는 사람들에게 대답해주고, 교육을 받으러 가겠죠. 교육? 무엇을 위한?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용사는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주위를 둘러보려 하면 몸이 삐걱입니다.
욱신거리는 온 몸에 감각기관도 현실을 차츰 느껴갑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목줄기를 물어뜯던 짐승의 이빨, 고통이며 감촉이 남은 듯 아직도 선연한데.
꿈이었던 걸까요?
둘러보면 그러나, 본인이 지내던 방도 황성 안도 아닌 처음 보는 장소입니다.
정신이 돌아오자 머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무래도 꿈은 아니었나봅니다.
그래도 몸은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P:테이블, 침대, 거울, 창문, 문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에이단 가렛:(끄응... 팔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킵니다. 방금 일어난 탓인지, 아니면 일전에 한계까지 혹사당한 탓인지 푹 꺾일뻔 한 것을 가까스로 지탱해 용사의 체면을 세웠습니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을 보자면 자신을 바로 죽이려는 의사는 없어 보이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우선적으로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창문부터 살펴봅니다.
KP:창문
척 봐도 지상과의 거리가 꽤 되는 높이입니다. 뛰어내려 탈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노을이 지고 있군요. 비쳐들어오는 햇살이 붉었던 까닭입니다. 바깥은 황무지지만, 그조차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에이단 가렛:......여긴, (정신을 잃기 직전의 순간을 떠올립니다. 분명히 마왕성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일까요? 마왕성의 근방에 사람이 살 리 없는데. 어쩌면, 정말 작은 가능성이지만, 제국에서 그를 돕기 위해 누군가 보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외로운 여정에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리 없다, 용사의 길은 외로운 것이라고 다시 되뇌여보이지만, 이태까지의 여정은... 어쩌면 느꼈던 것보다 외로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작은 희망이 용사를 기쁘게 합니다. 주위를 보다 다음으론 문으로 향합니다.)
KP:문
고풍스런 나무 문입니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슬쩍 밀거나 당겨보면, 잠겨있지 않아 손쉽게 열립니다.
에이단 가렛:(잠겨있지 않은 문에 오히려 놀라 손을 뗍니다. 막상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져 다시 방 한가운데로 돌아갑니다. 제가 누워 있던 침대에 걸터앉아 그것을 살펴봅니다.)
KP:침대
당신이 누워있던 침대입니다. 희고 푹신합니다. 다만 조금 오래된 것인지 삐걱이는 나무 소리가 나네요.
관찰 판정
에이단 가렛: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KP:침대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들을 발견합니다.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었습니다. 바스라질 듯 종잇장이 바짝 말랐습니다.
마구 휘갈겨진 불친절한 글씨로,
'왜',
'어째서',
'그만두고 싶어…….',
'이건 악몽이야.',
KP:'세상의 끝?'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구석에 작게 쓰인 글씨를 추가로 발견합니다.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태어났다면, 마왕은?'
지능 판정
에이단 가렛: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휘갈겨 썼는데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익숙한 글씨체이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이곳은 생애 처음 오게 된 것인데... 왜일까요?
에이단 가렛:.....(종이 쪽지를 매만집니다. 모든 것이 그에게 의문을 던집니다. 의심하라고 종용하듯이. 그저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던 사제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시종들의 동정하는 시선. 암시하듯, 작은 단서를 던지듯, 바라는 결론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용사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종이쪽지를 대강 접어 주머니 속에 넣고 테이블을 살핍니다.)
KP:테이블
정갈한 원형의 나무 테이블입니다. 어쩐지 사용감이 좀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 탐사자가 내내 휘두르며 베었던 아론다이트도 갈무리되어 있네요.
에이단 가렛:...! (가장 확실한 아군. 아론다이트를 재빨리 잡아챕니다.)
이 곳에서 가장 믿을 만한 아군을 쥡니다. 역시, 그것은 꿈이 아니였습니다.
KP:관찰 판정
에이단 가렛: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KP:잉크 병과 펜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쓰고 있었던 걸까요?
에이단 가렛:...음... (종이쪽지를 꺼내봅니다. 혹시 이 쪽지를 쓴 사람의 잉크와 펜일까요? 대조하듯 보다 쪽지 끄트머리에 펜으로 한 번 제 이름을 적어봅니다. 에이단 가렛.)
KP:펜에 이름을 적으려고 하자, 굳은 잉크 탓인지 뻑뻑하게 종이 위에서 맴돌기만 합니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네요.
에이단 가렛:(아쉬운 듯 잉크를 돌려둡니다. 펜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정확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지만, 편한대로 쪽지를 쓴 펜과 잉크라고 생각하기로 합니다. 둘 다 낡았으니까요.)
(문득 제 몰골이 궁금해져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KP:거울
무엇인가 오래된 듯한 이 방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며 새 것처럼 빛을 내는 물건입니다. 깨끗하게 비치는 거울 위로 에이단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데,
관찰 판정
에이단 가렛: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KP:문득 거울을 보는 눈길 안으로, 이곳에 선 거울 안의 자신이 낯설지 않음을 느낍니다.
어째서?
에이단 가렛:(어째서인지 낯설지 않습니다. 비단 이 거울뿐만이 아니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이 침착한 마음입니다. 이곳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제 손에 쥐어진 아론다이트 뿐... 용사는 의문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것, 주어진 의무,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것만이 미덕이기에... 도망치듯 문으로 다가가, 마지막으로 방을 한 번 둘러보고 문고리를 잡아 돌립니다. 방을 나섭니다.)
문 바깥으로 나서면, 여전히 하얗게 일렁이는 천장.
높게 솟은 성채의 뾰족한 지붕은 마법처럼 투명하여 눈 안에서 붉은 햇살로 반짝거리고,
성 안은 마치 거대한 온실 같습니다.
여름 햇볕 안에 들어와 있는 마냥 따스하고 안온했습니다.
가운데가 뻥 뚫려 난간에서 홀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로 중앙 홀은 그 가운데 꽃마저 드문드문 화려하게 피어 있습니다.
당신은 불현듯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흉흉한 마왕성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구해진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멍한 채로 당신은 발걸음을 옮깁니다.
잘못 찾아온 것일까요?
혹은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꿈 속일까요?
선한 누군가가 당신을 이곳까지 옮겨다준 걸까요?
아니면 이조차 마왕의 술수일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입니다.
빅토르:에이단.
호명하는 목소리.
고개를 들면 비슷한 눈높이의, 보석같은 눈동자와 걸맞게 온통 빛나도록 치장한 마왕이 서 있습니다.
비록 화려하긴 하지만 어쩐지 마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황성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두려워하듯 이마에 난 뿔도, 박쥐의 것 같은 날개도 없습니다.
마주치고서 영원처럼 굳었던 당신.
순간 말이 없습니다.
침묵을 깬 것은 당신의 앞에 선 그입니다.
빅토르:놀랐어요?
그래요, 제가 바로 마왕 빅토르예요.
그렇게 말하는 마왕은 당신을 보며 어쩐지, 조금 웃고 있습니다.
에이단 가렛:(고개를 돌립니다. 낯선 얼굴. 낯선? 용사는 스스로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순간 멍해집니다. 이 곳은 묘합니다. 판단을 흐리고, 감각이 뒤섞여서. 어째서인지 익숙한 곳. 나는 당신을 모른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주머니 속 가벼운 종이쪽지의 무게가 아론다이트보다 무겁게 느껴집니다. 아니, 의문은 필요 없습니다. 확신 뿐입니다. 눈 앞의 남자는 용사의 적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걸까요?) ...당신이, 마왕입니까?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죠?
빅토르:(상대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끝내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일련의 과정들을 즐겁게 눈에 담으며 미미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였다.) 마왕성에 사는 사람이라면 마왕 말고 누가 더 있겠나요?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에이단 가렛. 용사라고 하면 제국에 단 한 명 뿐인데. (말하고는 네 상태를 살피는 눈.)
에이단 가렛:......내가 용사인 걸 알고 있군요. 무슨... 속셈이죠? 날 여기로 데려온 것도 당신인가요? (금방이라도 발도할 듯, 한 손을 아론다이트에 가져다댑니다. 베어야 하는 상대. 숙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악의 축인 마왕은 제거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눈 앞의 당신에게 적의가 보이지 않습니다. 흉한 마물의 신체부위도 보이지 않고요. 평생 상상하고, 머릿속에서 베어넘겼던 마왕은 당신같은 모습이 아니었는데. ... 외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진짜 마왕이든 마왕 사칭범이든 간에 베어넘기면 그만입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선뜻 칼을 휘두를 수가 없습니다.)
빅토르:엄밀히 말하자면... (용사의 것 과는 조금 다른, 더 쨍한 금발의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느즈막이 웃는다. 이 순간을 고대해왔다는 것 처럼.) 마물이 데려온 거예요. 시키긴 내가 시켰지만. 왜, 속셈이 별달리 있겠어요? 용사와 마왕이 만나는 건 제국의 빅! 이벤트인데 이렇게 시시하게 끝낼 순 없잖아요. 아슬아슬하게 잘 살아남는 것 같아서 굶주린 마물들을 한 번에 보냈더니 죽어갈 줄이야. (그래선 안 되지, 하듯 휘리릭 얇은 손가락을 공중에서 돌린다. 마법을 부리는 것 처럼 보였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온전히 쏟아지는 선명한 적의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마왕같이 안 생겨서 놀랐죠? 그거 다 편견이에요. 뿔 있고, 날개 있고 그런거 다 나를 직접 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한 말인데.
에이단 가렛:당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거라면, 당신이 데려온 것과 뭐가 다릅니까. 말장난은 그만두세요. (흉악한 악당, 박쥐 날개, 늑대의 발톱......) 나는 당신을 죽이기 위해 왔습니다. 얕보이고 있나요? 기회가 있었을 때 죽였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녹아내린 피부, 마물의 아버지, 비열한 약탈자.......) 나는 용사입니다. 그들이 내게 말한 게 거짓일리 없어요.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외형을 바꾼다고 내 검이 무뎌지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마왕. 수식어와 묘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왕은 마왕일 뿐. 망설이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애써 마왕에게서 정보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제 행동에 주석을 달아봅니다.)
빅토르:에이, 다른데. (도저히 마왕의 엄숙함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유치하기도 한 툴툴거림이였다. 연기일까? 이게 마왕의 본성인 걸까. 네 살벌한 말과 용사 주변을 감싼 굳건한 의지에도 겁내지 않고 도리어 한 발짝 성큼 가까워져선 실실 웃기까지 한다.) 이래뵈어도 정정당당한게 좋거든요. 다 죽어가던 용사랑 싸워서 이겨봤자 재미도 없고 말이예요? 그러니까 에이단, 당신은 내일까지 해서 하루동안 열심히 회복해서 정정당당하게 검을 맞대어보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물론 선택권은 없었다.) 아... 외형을 바꿨다고 생각할 만큼 내가 잘생겼나? 그럴 수 있지. 그런 무거운 검과 어깨에 얹힌 의무는 잠시 내려두는게 좋지 않겠어요, 에이단? 지쳤을 텐데~
에이단 가렛:(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그저 몸을 둘러싼 몰이해의 감각에 치를 떨 뿐입니다. 그토록 기다려온 순간인데 뭘 기다리고 있나요? 숙명의 고리를 끊어낼 참이기 때문일까요? 제 목적을 다 한 뒤의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요? 반면 눈앞의 마왕은 너무나 태연해보입니다. 용사는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용사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용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다가온 만큼의 걸음을 물리고, 에이단 가렛은 주박처럼 제 신경을 지배하던 불안감을 뚫고 무작정 검을 꺼냅니다.) 나는 당신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제국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요.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잇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으득 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오늘 당신을 죽일 거예요. 신경써주는 척 하지 마세요. 이건 놀이도, 게임도 아닙니다!
빅토르:어이쿠. (꺼내어진 날 선 칼의 빛이 번쩍이기 전에 반 발자국 물러난다. 이를 드러낸 개를 달래듯 워워, 하고 두 손바닥이 보이도록 내밀어 행동을 저지시킨다. 우리의 거리는 원점보다 조금 더 멀어진 상태였다.) 당신의 망신창이가 된 몸을 좀 봐요. 당장 누워만 있어도 모자랄 판에 무리는... (애초에 현재로썬 싸울 상대로조차 보고 있지 않은 모양일까. 곤란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려보인다.) 내일 해도 늦지 않아요, 에이단. 용사가 이렇게 폭력적이면 어떡하나~... 그렇지. 배고프면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죠. 괜찮다면 함께 식사를 할까요? 마지막 만찬 같아서 딱이네요. (제 멋대로 대화를 진행하고 혼자 끄덕이더니 결정했다는 듯이 등을 돌린다.) 거기서 멀뚱히 검 들고 서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용사님.
에이단 가렛:(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집니다.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몸 상태로는 바깥의 마물조차 어찌할 수 없습니다. 아니....... 만약 온전한 몸 상태였다 하더라도 당신을 이길 수 있을까요? 그러리라 믿고 오랜 시간 훈련했으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작 당신의 수족들에게 나약하게 꺾이는 용사에게 그런 힘이 있을까요? ......의심은 죄악입니다. 용사는 이기기 위해 제련된 검입니다. 용사는 분한 듯 입술을 짓씹습니다. 당신의 뒷모습이 자신을 비웃는 듯 합니다.) 용사와 마왕 사이에, 폭력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리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론다이트의 흰 검신이 천천히, 검집 안으로 몸을 감춥니다.)
빅토르:어짜피 하루동안 같이 지내게 될 거 좀 친근하게 굴어주면 어디 덧나요? 참나. 머릿속에 있는 생각 다 보여요. 복잡한 생각이랑 어려운 말들은 검이랑 같이 넣어뒀으면 좋을 텐데. (고개만을 슬쩍 돌려 내뱉은 목소리는 만족스럽지 못 함을 강렬히 표출하는 듯 하였다. 정말 어디서 이런 마왕을 만났다고 하면 다들 믿지도 않을 것 처럼 굴어선, 유유히 긴 다리로 어디론가 열심히 걸었다. 듬성듬성 뒤를 돌아보며 네가 잘 오고 있는지도 확인한다.)
에이단 가렛:(혼란스럽습니다. 이것은 분명, 상처의 후유증이겠지요. 적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입니다. 용사는 새로 생긴 습관처럼 입술을 짓씹다, 문득 비린 맛에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입술이 조금 찢어진 듯합니다. 복잡한 생각, 어려운 말들. 마왕은 여전히 놀리듯 투덜댑니다. 조금 억울했습니다. 제 생각에 짓눌리고 있는 것은 용사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상상을 요구하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피로했습니다. 중간중간 당신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황급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당신의 호의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그렇지만, 당신을 죽이고 난 다음에는요? 수수께끼는 늘어만 갑니다.) 당신은....... 왜 그런 짓을 하죠? (툭, 의문을 던져봅니다. 당신을 교란시키기 위한 질문이자........ 솔직히 말하자면, 스스로의 궁금증이기도 합니다.)
빅토르:(다시 한 번 고개를 돌아보았을 때는 마침 네 입술에서 핏방울이 살짝 배어나올 때였다. 살짝 놀란 듯 커진 눈동자와 동시에 무언가 말하려 입술이 달싹였지만, 과한 참견이라 생각했는지 곧 굳게 다물린 채로 여전히 쓸데없이 넓기만 한 마왕성의 홀을 걸었다.) 그런 짓이라면, 무슨 짓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당신에게 마왕답지 못 하게 대하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 그냥, 저는 원래 이랬어요. 이게 나인데. 제국은 쓸데없이 이야기를 과장하는 재주가 있다니까요. 만약 내일 날 성공적으로 죽이고 용사로써 성공하게 된다면 마왕이 잘생기고 친절하다고 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에이단. (까르륵!)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해는 다 지고 완연한 저녁입니다.
일방적인 농담과 일방적인 적의가 섞이지 못 한 채로 마왕은 엉뚱한 소리나 하며 당신을 다이닝 룸으로 인도하고...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성찬을 보며 당신은 잠깐, 놀랍습니다.
분위기 있게 배치된 촛대며 깔끔한 식기들, 커다란 통구이, 푸릇한 샐러드,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스테이크, 생선 구이, 곡물을 쪄낸 것들...
죽여야 할 상대와 이런 진수성찬을, 사이좋게 식사라니요!
에이단 가렛:(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분위기에, 빤히 식탁을 바라보다 태연한 당신을 흘깃 쳐다봅니다. 매 시간 긴장하고 경계하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제국의 수호를 한 몸에 받으며, 제게 호의를 보내는 사람에게만 익숙했던 용사라면 더욱이요. 용사는 눈치를 보며 당신이 식기를 들기만을 기다립니다. 최후의 경계선이라고나 할까요.)
빅토르:(어짜피 경계할 것 정도는 예상했는지 서슴없이 맞은 편 자리에 앉고는 식사 예절을 아주 바르게 지키며 순서대로 놓인 식기를 들어, 가까이에 있던 샐러드를 콕 집는다. 그 사이에 네 눈동자를 바라보며 한 번 의미심장하게 웃어주고 입 안에 넣었다. 오물오물....) 안 들어요? 출출할텐데. 내일 힘 쓰려면 고기도 많이 먹고 해야지. 독은 안 들었어요, 이거 봐. (오물오물~)
에이단 가렛:......마왕인데, 독 정도 먹는다고 죽지는 않겠죠. (퉁명스럽게 대꾸하다가도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들을 쿡쿡 찔러보았습니다. 먹음직스럽게 생겼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식사를 한지가 꽤 되었던가요.) ......죽일거면 진작 죽였겠죠. (당신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작게 작게 한 입씩 썰어 입에 넣었습니다.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용사가 생각했던 숙명이란 이런 게 아니었는데요. 마왕은 무슨 생각일까요. 이 곳에 먼저 왔었던 쪽지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수많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음식의 맛은 군더더기 없이 훌륭합니다.)
빅토르:..굳이 밥 먹다가 비위 상하게 독으로 중독되어가는 용사의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진짜 걱정 말아요. (왠지 서운한 말투.. 였다가 네가 생각 많은 표정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는게, 어딘가 기대하고 있는 낯이였다. 음식의 맛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셰프처럼. 한참 흘끔거리다 익숙하게 접시를 비워가기 시작한다. 채소류를 위주로, 가끔 기름지지 않은 고기류에 손 한 번씩 가고 다시 채소.) ..그래서, 좀 어때요. 먹을만하나?
에이단 가렛:(들은 체 만 체하며 당신이 먹는 음식을 주의 깊게 살핍니다. 샐러드, 고기, 채소류....... 식사 예절을 배우는 아이처럼, 순서대로 하나씩 제 접시에 옮겨 담고 먹기 시작합니다. 물론 예절을 배우는 아이가 중독을 의심하지는 않겠지만요.) 왜....... 부담스럽게 쳐다보나요? (조금 어색하게 시선을 돌립니다.) 나쁘지....... 않네요. 마왕도 이런 걸 먹고 사나요?
빅토르:제 시선이 부담스러웠나요? (능청스레 고개를 기울이자 금발의 긴 머리카락이 사락,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것을 하얀 손으로 깔끔히 뒤로 넘겨선 시선만을 아래로 내린다.) 그럼요. 마왕이라고 인간의 뼈를 씹고 피로 샤워를 할 리가 없잖아요. 상상만 해도 불쾌하네! (소름끼친다는 과장된 몸짓!) 나쁘지 않다는 건 호평이라고 받아들일게요, 에이단.
에이단 가렛:그렇게 빤히 바라보는데,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 것보다 화려한 빛의 금발이 흘러내리는 것을 곁눈질합니다. 전투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용사의 머리는 짧은 게 원칙입니다. 거추장스러운 긴 머리를 유지한다는 건 당신의 자신감일 수도 있겠네요. 내려다보는 게 익숙한 사람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한 일들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 같은데요. (뒤이은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제 입으로 마왕을 칭찬해줄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물론 맛있는 건 사실이었으므로, 굳이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빅토르:아~ 그럼 모른체 안하면 되는 일 아니예요? 제국에서 상대 눈치 보는 방법은 안 알려주나? (농담이에요, 농담. 하고 재빨리 덧붙이며 식기를 내려둔 오른손을 제 창백한 뺨에 올려둔다. 확실히 그의 머리카락은 길고 길었다. 언뜻 보아도 허리까지는 내려올 길이는 그의 키를 고려한다면 더욱이 긴게 확실했다. 정말로 전투에 자신이 있었기에 기른 건지, 그저 용사가 찾아올 때 까지 자르지 않은 건지 상대가 알 방도는 없었다.) 내가 한 일? 아하, 막 마을에 마물 보내고 에이단에게도 보내고, 한 것들? 하하.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태도를 고수한다.) 그래요, 칭찬까지는 안 바랬어. 그 정도면 훌륭해요. 고맙고, 잘 먹었다면 다행이지.
에이단 가렛:.......? (꼬고 꼰 당신의 말에 잠시 헷갈리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가 바로 뚱한 표정으로 돌아갑니다. 뭐.......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기도 하네요. 용사가 눈치를 볼 일이 어디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상황은 용사에게 너무도 고되었습니다. 칼로 찌르고 베는 방법이라면 수도 없이 연습했지만 마왕과 잡담하는 방법은 배운 적 없으니까요.)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약탈하고....... (새삼 제 입으로 내뱉자, 당신의 온갖 악행들, 대부분, 아니 사실 전부 들어서 전달 받은 것이지만, 그들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어떻게 굴건, 어떻게 보이건 당신은 악당이었죠. 잊고싶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잊고 싶은 걸까요?) 식사는 이쯤 하죠. (입맛이 떨어진 듯 식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고기를 뜯는 것도 문득 마물에게 뜯기던 감촉을 생각하니 불쾌해졌습니다.)
빅토르:안 알려준다는거 알아요. 기껏 해봤자 검술이나 체술, 마왕성으로 가는 방법, 응급처치, 그런 것들이나 배웠겠지. 용사란 그런 거잖아요?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여전히 들뜨고 장난스러운 목소리지만 그 내용은 어딘가 예리하게 날 선 것들이였다. 이대로 논쟁이 일어나거나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말을 잇는다.)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마왕이 심심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이것 봐, 여기엔 나 혼자예요. 평소엔 밥도 혼자 먹고 꽃도 혼자 물주는데 마을에라도 안 놀러가면 지루해서 어떻게 버텨요?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마치 그런 악행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가볍게 흘리는 말투로 은근하게 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성격인 듯 했다. 네가 식기를 내려놓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네, 그럴까요. 하고 자신도 입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에이단 가렛:......잘 알고 있네요. 그런 것 치곤 태평하시고. (잠시간 침묵했습니다. 에이단 가렛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하고요. 그래서 용사는 마왕의 말을 되새기지 않았습니다. 제 머릿속에 쌓이는 짐들은 구석으로 보이지 않게 밀어놓았습니다. 성년이 되기까지의 짧은 삶동안 생겼던 다른 크고 작은 의문들 옆에 차곡차곡 쌓는 것이지요. 언젠가 그 자리가 모자라게 될 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그때는....... 이런. 짐이 한 개 늘었습니다.) 심심한가요? 마물들도 있는걸요. 당신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악행을 저지릅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오히려 당연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적의가 깃들지 않습니다. 순수한 의문만이 담깁니다. 당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용사는 마왕을 이해하지 않으니까요. 천천히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났습니다. 실수로라도 당신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게 주의하면서요.)
빅토르:그 용사가 이 빠진 개와도 같은 상태니까요. 태평할 수 밖에 없죠. (애매한 단어 선택들. 마치, 이 아슬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고도 느낄 수도 있을 법한. 아주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마냥 싸울 생각은 없는 자의 안일한 말.) 마물들은 어디까지나 마물들이예요. 끼리끼리 놀아아죠. 아, 근데 그거 알아요? 보통 인간들보다 마물들이 똑똑한 경우도 되게 많다? 제 명령 안 듣는 마물들도 많아요, 너무.. 똑똑해서. (씁.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술을 한 번 혀로 훑고 눈을 데굴 굴려 대화 주제를 넘긴다. 네 쌓이고 쌓이는 의문같은건 해소해줄 생각도 여유도 없어보이는 묘한 분위기였다. 거리를 유지하는 용사의 뜻을 적당히 거스르지 않은 채로 다이닝 룸을 한 발 먼저 나선다.) 용사님의 배가 부르길 바라며. 배가 부르면 좀 걸어야 하는 법이고요. 잘 시간까지는 좀 남았고 소화 시킬 겸 마왕성 집들이는 어떠신지?
에이단 가렛:(모욕. 그러나, 또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용사는 당신의 말을 못 들은 척 했습니다. 듣고싶지 않은 이야기라면 듣지 않으면 그만이겠죠. 당신의 태도는 애매합니다. 적의와는 다르죠. 아니, 적의일까요? 다만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용사는 사람의 감정을 헤아려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호의 이외의 감정에 노출되는 것은 이상한 경험입니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나요? (조용히, 뒤를 따릅니다. 거리를 두기 위해 보폭을 맞추는 것이 당신과 비슷하게 걷게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빅토르:그런 서운한 말 마세요, 에이단. 그래도 묻고 하는 거랑 안 묻고 무작정 가는 것 보다는 낫지 않나요? (금색의 머리칼이 걸친 어깨를 으쓱, 뒤이어 실실 웃으며 굳이 거리를 좁히지 않은 채 쭉 나아간다.)
이제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사악한 마왕이라니, 아주 웃기는 소리입니다.
당신은 혼란스러워 하는 채 그를 따릅니다.
홀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실내 정원이 꾸며져 있습니다. 아름답네요.
KP:교육 판정
동 년.:
교육
기준치:
65/32/13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에이단 가렛:
교육
기준치:
65/32/13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 이 꽃은 디기탈리스와 당신이 잘 아는 연분홍의 장미입니다.
꽃말은 '가슴 속의 생각'과,
'나의 마음 당신만이 아네' 였지요.
빅토르:...(정원에 난 길을 따라 쭉 걷다가 우뚝 멈추어, 연분홍의 장미 덤불 사이에서 활짝 핀 한 송이를 꺾어 살핀다.)
에이단 가렛:정원도 당신이 관리하나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장미처럼 화려한 당신과 어울린다는 생각은 애써 미뤄놓고서요.)
빅토르:그럼요. 보셨다시피 이 성엔 저 혼자니까요. 마왕에 이름이랑은 좀 어울리지 않아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제국의 사정이구요~ (뭐가 좋은지 까르륵 웃는다. 가시를 아슬하게 빗겨가 줄기를 잡은 얇은 손가락, 낭만적이게 보일 수도 있는 연분홍색의 장미. 향을 한 번 깊게 마시고, 더 이상 볼 이유는 없다는 듯 땅에 아무렇게나 꽃 송이를 버린다.)
에이단 가렛:(망설이다, 땅에 떨어진 장미를 주웠습니다. 어째서인지 화려하게 흐드러진 장미의 최후가 저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디기탈리스와 장미는 같이 본 적이 없네요. (넌지시 꽃의 이름을 흘리고, 주워든 장미의 꽃잎을 살짝 쓰다듬었습니다. 꽃은 쉽게 지기때문에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기억에는 오래 피어있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빅토르:(약간 떨어진 곳에서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는 소리를 들었지만 굳이 말을 얹거나 하지 않고 다른 식물들을 눈에 새기다가 목소리가 들릴 즈음에야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능글맞게 웃는 낯.) 그쵸, 황궁에선 둘이 같이 안 키우니까요. 그보다.. 딱 보고 아셨네요. (마치 황궁을 잘 아는 사람처럼 당연스레 말하다가, 생각해보니- 하는 듯한 어조로 고개를 기울인다. 활짝 웃으며 가벼운 박수를 한 번 짝, 치곤.) 혹시, 꽃말도 알아요? (네가 꽃잎을 쓰다듬는걸 못 본 척 시선을 눈동자에만 고정한다.)
에이단 가렛:(홀린 듯 꽃만 바라보다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아는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용사의 교육에 대해서도 수상쩍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고, 황궁의 정원에 무슨 꽃이 피는지도 아는 것 같습니다. 지피지기일까요? 누군가에게 보고라도 받는 걸까요? 황궁에 마왕의 끄나풀이 숨어들어갔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용사는 걱정 앞에 평정을 내세우고 대답합니다.) 가슴 속의 생각, 과....... 나의 마음, 당신만이 아네.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 같네요.
빅토르:(그런 복잡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가 답을 하기만을 기다리다가, 정답을 말하자 능청스레 웃던 입꼬리의 끝이 아주 미세하게 아래로 내려진다. 오히려 그 때문에 자연스럽고 은은한 미소로 보일 법도 한 얼굴로 두 눈을 깊게 감았다 뜨고,) 맞아요. 검만 쓰는 줄 알았는데 책도 열심히 본 모양이네요, 에이단. 훌륭해요. (뒤이어진 말에 표정을 보이기도 전에 몸을 돌려 상대를 등진 채 나가는 길 쪽으로 변덕스럽게 걸어가버린다.) 글쎄요. 예뻐서 심어둔 꽃에 의미 부여를 하는 건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요? 빨리 따라오지 않으면 길 잃어요~..
에이단 가렛:(용사는 조금 뿌듯해졌습니다. 아닙니다, 적의 칭찬따위 마음을 풀어놓으려는 속셈에 불과하겠죠. 쉽게 들뜨는 것은 용사의 소양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괜히 꽃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얇은 꽃잎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비비자 부드러운 비단같은 촉감이 느껴집니다. 조금의 허세와 함께,) 용사는 제국을 수호해야 하니까요. 제국에 대해서 알고 공부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 먼저 무언가를 물어본 것 치고, 당신은 제멋대로 답변을 넘겨버립니다. 꽃을 손에 쥔 채로, 조금 빠른 걸음으로 마왕을 따라잡았습니다.) 당신이 그렇단 말은 아니었는데요. 의미부여는 당신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지만, 정말로 이곳에서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큰일이므로 빠르게 당신의 뒤를 쫓았습니다.)
빅토르:그렇죠, 그것도 모범 답안이죠. (당신답네요, 하는 듯한 웃음 서린 말투가 어깨 너머에서 들려온다.) 용사 아니랄까봐~ 하하. (빠르게 가까워진 용사 특유의 발걸음을 듣고도 한동안 돌아보지 않았다. 말도 없었다. 고급진 디자인의 카펫이 죽 깔려있는 층계에 두 번째 발을 디디고 나서도 발갛게 물든 입술은 곧게 다물려 있었다. 딱히 용사의 말에 기분이 상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생각이 많아진 사람 특유의 내려앉은 표정만 언뜻 비춰질 뿐이였다.)
복도
층계를 올라오면, 당신이 처음 문을 열고 나왔던 방의 복도입니다.
과연 마왕성이니만큼 크고 넓은 곳, 길게 늘어진 복도들의 방.
마왕 빅토르는 한 방 한 방 문을 가리키며 다 비어있는 방이노라 설명하지만,
끝에 있는 마지막 방에 대해서는 입을 다뭅니다.
빅토르:저기는 제 공간이니까, 들어가지 말았으면 해요.
문틈으로 보이는 건……\
KP:에이단, 관찰 판정
에이단 가렛: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언뜻, 안쪽에서 샛붉은… 색깔을 본 것도 같습니다.
문득 이곳까지 도달하기 전 자신이 흘리고 마물들이 흘렸던 피가 떠오릅니다.
왜일까요.
안은 온통 붉은 벽지인 걸까요.
에이단 가렛:(붉은색. 머리가 빠르게 돌아갑니다. 마왕에 대해 무엇이든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야지 승리할 수 있겠지요. 마왕은 용사의 교육 과정도 황궁의 사정도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용사는 질문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당신 방인가요? 붉은 칠이라도 해놓은 건가요? (들어가보자고 꼬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고민이 됩니다.) ......문 밖에서 한 번 슥 보면 안되나요?
빅토르:엄밀히 말하면 제.. 개인 방이죠. 자는 곳은 따로 있지만... 예? (뒤이어진 말에 어이가 없어진 듯, 멍청한 목소리를 내었다가 흠흠 가다듬더니 미간 사이를 약간 좁힌다.) 방금 들어가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을 텐데요. 아무튼, 안 돼요. 에이단은 아까 누워있던 방에서 자면 되니까 들어갈 일도 없을 테지요. (여태 능글하고 과히 다정하게 말하던 것과 다르게 이번엔 확실히 경고하는 말투였다. 어딘가 신경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할 법한.)
에이단 가렛: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바깥에서 보는 건데. (미련 탓인지 조금 징징거리는 어투가 되었습니다. 이런, 아주 어릴 때나 가끔 하던 말투인데. 적에게 얕보여선 안되지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갈무리했습니다.) 제가 있던 방이라면. 손님방......같은 곳인가요? (마왕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숨길수록 궁금해지는 법입니다. 용사는 눈치가 아주 좋다고 말할 수 는 없었지만, 노골적으로 비밀을 숨기는 사람을 앞에 두고 순순히 고개를 돌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습니다. 머릿속 주의할 점에 마왕의 방, 이라고 커다랗게 써놓았습니다. 줄까지 쳐서요.)
빅토르:아뇨. 절대 안 된다고 말했잖아요. (완전히 그 답지 않게 굳어선 딱딱한 말투로 우뚝 멈추더니 혹여 그 안을 들여다볼까 싶었는지 팔을 뻗어 그 쪽으로 가는 방향을 막았다. 호기심 많은 애를 다루는 것 같은 기분에 깊은 한숨을 내쉬고, 곧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는 듯 가다듬는다.) 손님방... 네.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거기가 가장 방 중에서 깨끗할테니 굳이 다른 곳에서 잘 생각일랑 마시고. (더 이상 틈을 주지 않으려는지 다시 계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에이단 가렛:(단호한 태도가 영 그른 것 같습니다. 뭐....... 마왕이 하라는 대로 하는 용사가 어디 있겠어요? 용사는 아쉬움이 남은 눈으로 당신이 가린 문 너머를 가늠하듯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습니다.) 손님방? 마왕성에 방문객이 오는 것도 아닐 텐데 우습네요. (습관처럼 비꼬고 방해물이 사라진 문을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다음 기회에.)
빅토르:(그런 눈길마저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응시하다가... 상대의 비꼬는 듯한 질문에 픽 웃으며 복도 끝 쪽 계단을 오른다.) 하하, 방문객이 왜 안 올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아까 썼던 식기들을 평소엔 나 혼자 쓴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죠? (팔이 네 개도 아니고~ 웃으며 몸을 돌린다.)
탑
복도 끝에 난 계단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탑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뾰족하게 솟은 탑은 이제 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는 하늘에 맞닿을 듯,
쏟아지는 별을 맞을 듯, 아득하게 높습니다.
여기서 보면… 아주 저 멀리,
날씨가 좋은 날에는 민가가 어렴풋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한 차례 붑니다.
마왕 빅토르가 동시에 중얼거립니다.
KP:에이단, 듣기 판정
에이단 가렛: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빅토르:……어. 나도 …… 싶다고.
듣기 힘든 작은 목소리.
당신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었을 듯 싶습니다.
에이단 가렛:......무슨 말 했나요?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물어봅니다.)
빅토르:...(밤바람에 살랑이던 머리카락이 순간 크게 불어온 바람으로 인해 공중을 부유하다 가라앉는다. 찡그린 상대의 표정과는 반대로, 어딘가 애틋한 표정을 띄우고 있는 마왕. 이 자를 더 이상 마왕이라고 칭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인간다운 얼굴이였다.) 그냥 혼잣말이였어요. 자, 그럼. 둘러본 소감이 어땠나요, 에이단?
에이단 가렛:(밤의 그림자가 마왕의 얼굴에 내려앉았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별빛이 비춘 탓인지, 당신의 눈동자가 빛나는 듯 합니다. 문득, 마왕을 처음 마주친 순간의 보석같은 눈동자를 기억합니다. 당신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극악무도한 마왕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용사는 작은 애수를 느낍니다. 이것은 아마, 곧 제 손으로 세상에서 지워낼 존재에 대한 존중이자 자신이 지내온 시간들에 대한 멜랑콜리일 것입니다. 그래요. 그게 분명합니다.) 소감이 필요한가요? ....... 화려하고, 넓고, 호사스럽고....... 마왕이 혼자 쓰기엔. (외로울 것 같다는 말은 삼켰습니다. 쓸데없는 감상이니까요. 그리고 마왕에게 그런... 감정이 있을리 없습니다.)
빅토르:(블루 토파즈와 아메시스트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물리는 순간, 마왕은 미소를 지었다. 왜? 당신에게 의문 몇 가지를 새로이 쌓아주면서도 결코 속을 드러내지 않는 얇고 두툼한 실타래처럼 속내를 드러낼 생각이 없어보였다. 모든 것이 비밀스러운 마왕, 그 앞에 선 용사. 마왕은 용사를 오랜 친구 보듯 가깝게 대했다. 그는 지금도 당신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같은 바람을 맞으며 비슷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오늘 들은 말 중에서 제일 칭찬이네요. 그렇게 느꼈다면 다행이야. 같이 걸은 보람이 좀 있네! (뒷 말에 어떤 말이 와야하는지도 못 알아챌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지만 그것에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밝은 모습을 봐서는 외로움이라곤 한 톨도 느끼지 못 할 것 같은 모습이였지만 사실은 어떨지, 내일까지 아는 순간이 오긴 할까.) 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저 왜 이름으로 안 불러주고 그냥 마왕, 마왕 해요? 저는 에이단이라고 부르는데... (입 삐죽.) 마왕 빅토르, 이렇게도 말고 그냥 애칭처럼 비챠~ 하고 불러봐요. 자, 비챠!
에이단 가렛:(알 수 없습니다. 용사의 짧은 일생에 이태껏 불확실성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명명백백한 빛의 길에서, 그림자는 언제나 발 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그림자는 겹쳐지고, 눈이 멀 듯 밝았던 광원은 희미해져서....... 이것이 마왕의 목적일까요? 용사는 마왕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습니다. 구조물의 그림자가 낯을 가려주길 바라면서.) ......마왕에게 그 이상의 호칭이 필요한가요? 당신이 뭐라 부르든 상관하지 않지만, 내가 당신을 그 이름으로 부를 일은 없을 거예요. (마왕 빅토르. ......비챠. 용사는 어떤 본능으로, 자신이 그 이름을 잊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지고 가야 할 무게였습니다. 용사는 정체모를 짓눌리는 기분에 시달립니다.)
빅토르:(혼란스러움이 언뜻언뜻 비치는 상대의 얼굴이 그림자에 먹혀들어갈 즈음에 마왕은 고개를 돌려 먼 곳의 민가 쪽 방향을 한껏 바라보는가 싶더니 그 새 미련은 버린 것 처럼 멀끔한 얼굴로 머리를 정리한다.) 흠~ 그래요. 사실 쉽게 불러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나만 에이단이라고 불러야지~ 하지만 언제든 불러줄 생각이 들면 편하게 불러도 되니까요. (내일이면 검을 맞댈 사이임을 잊었을 리가 없는데도 태평한 태도였다.)
에이단 가렛:(내일은 결전의 날입니다. 실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왜 당신은 이토록 인간같을까요? 왜 죽음을 앞두고서 이리도 태연한 걸까요? 왜 용사 자신만이 끝을 준비하고, 혼란스러워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용사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의 마지막에서 자신이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 지 궁금해하면서요.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까요? ......머릿속에 당신에 대한 생각 하나를 또 꼭꼭 접어 밀어놓았습니다. 공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둘러본 소감이 어떻느냐며 묻는 마왕의 말은 그러나,
딱히 그 자체를 궁금해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백 번 양보해 마왕이 용사가 아닌 처음 만난 사람에게 거처를 소개시켜준다 생각하고 있다라 치더라도,
친근하게 구는 양은 꼭 잘 아는 사람을 대하는 듯한 반응입니다.
도대체 이 마왕은 무슨 속셈인 걸까요.
대화를 하다가도, 당신은 종종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빅토르:피곤해요? 표정 좀 봐.
빅토르가 묻고, 어깨를 으쓱입니다.
빅토르:방으로 돌아가는게 좋겠네요. 시간도 늦었고, 승부는 내일이니까요.
그의 말이 현실성이 없습니다.
당장은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없으니, 휘적휘적 방으로 향합니다.
침대에 다시 누웠지만 도무지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렇잖아요, 마왕의 소굴에서 편안하게 잠이 드는 용사라니.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마왕이 이상하게도 친숙한, 그러니까 꼭……
황성의 이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그들과 똑같은 사람에 불과한 것 같다는 느낌이 차오릅니다.
……아뇨, 이럴 수는 없어요.
이런 건 있을 수 없어요.
당신은 그를 죽이기 위해서만 살아왔습니다.
그것만이 당신 생의 의미이자 목표이자 가치였는데.
마왕이 저런 사람이라면, 저토록 인간적이라면,
그리하여 당신의 '마왕'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저 먼 길을 한 명의 살인자가 되기 위해 온 셈입니다.
불안이 몰려옵니다.
당장 그를 죽여야 한다는 광기에 가까운 강박이 발밑까지 차들어옵니다.
결국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 등잔을 들고서 방을 나섭니다.
빛이 가득히 일렁였던 천장은 별빛조차 투과해내지 못하고 검습니다.
이렇게도 다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만치 암흑으로 뒤덮인 성 안.
홀에 피어있던 꽃향내는 기이한 마법 같고,
어슴푸레한 등불에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보며 당신은 조심조심 복도를 걷습니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아주 느리게……
빅토르:……서.
목소리입니다.
흠칫 멈춰섭니다.
누구일까요?
마왕이 떠올랐으나, 이 넓은 마왕성에 정말 그 혼자 뿐일까요?
당신은 기척을 죽이고 어두운 복도를 더듬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나섭니다.
아, 저 방입니다.
복도의 맨 끝에 있는 저 방입니다.
아까 마왕이 보지 말라 막았던 그 방입니다.
문틈으로 촛불처럼 가녀린 빛이 비칩니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빛줄기를 따라 문에 바짝 붙어서면,
빅토르:……소서.
마왕 빅토르입니다.
KP:에이단, 듣기 판정
에이단 가렛: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빅토르:용서하소서. 제발 용서하소서....
그리고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 떨리는 문장 끝,
그가…… 울고 있나요?
마왕이 일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듭니다.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신자가 아니라 제물처럼 초라하게 기도하며 꿇었던 무릎을 펴며 비틀거립니다.
...돌아섭니다.
문틈으로 보이는 방 안. 시야가 한정적입니다.
KP:에이단, 은밀행동 판정
에이단 가렛:
은밀행동
기준치:
70/35/14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열린 틈으로 당신은 방 안으로 들어섭니다.
기척 없이, 돌아선 빅토르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리고 등잔을 들어 방 안을 보면,
자세히 볼 필요도 없습니다.
'제발', '죽어', '죽여줘', '살고 싶어', '죽고 싶어',
……시커멓게 굳은 피입니다.
벽에 피로 온통 낙서가 되어 있습니다.
미치광이가 칠갑을 해 놓은 듯한 이 방에서 그는 무얼 기도하고 있던 걸까요.
인간의 피. 어두운 방.
그의 그림자를 다시 봅니다.
마왕.
KP:(SANC 0/1)
에이단 가렛:
SAN Roll
기준치:
40/20/8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KP:이성치 감소 없음.
나아가려 했던, 혹은 물러서려 했던 당신의 발에 무언가 툭 걸립니다.
그 소리에 마왕 빅토르가 섬뜩한 속도로 돌아봅니다.
빅토르:당신...
발밑을 보면 작은 수첩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든 등잔 아래가 어두워 그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떡할까요?
에이단 가렛:(발치에 무언가 걸렸습니다. 마왕은 용사를 노려봅니다. 주박같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용사는 망설입니다. 도망쳐야할까요. 그를 향해 검을 휘둘러야 할까요. 용사는....... 천천히 떨어진 수첩을 주웠습니다.)
빅토르는 돌아선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당신을 응시합니다.
그와 마주한 지 처음으로, 생경하게도, 새삼스럽게도, 두려움이 치솟습니다.
정말로, 그가,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혹은?
빅토르:(무거운 침묵. 원래도 창백하게 하얀 피부였지만 어둠 속에서 미약한 촛불 빛만을 받아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그의 얼굴은 죽은 자의 것 처럼 보였다.) ...기어코, 호기심을 이기지 못 했나요, 에이단 가렛. (목소리는 젖어 갈라진다.)
에이단 가렛:(용서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쌓아놓은 생각들이 용사를 괴롭힙니다. 마왕에 대한 것. 제국에 대한 것. 용사의 의무와 그 자신에 대한 것. 용사는 사실,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용사는 알고 있습니다. 이 괴로움의 원인은, 눈 앞의 당신 때문이라는 것. 용사는 마왕이 제가 상상하던 이가 아닐까 겁이 난 겁니다.)
(용사는 마왕을 죽일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은 언제나 확고하니까요. 그러나. 그러나....... 마왕 빅토르는. 비챠가 아닌 마왕으로만 남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째선지 참을 수 없이 괴롭습니다. 견딜 수 없습니다. 스스로도 비이성적인 감정에 찼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지만 용사는 이 괴로움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훈련은 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왜 이런 것은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용사는 알았습니다. 용사는 몰라야 했던 감정들을.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는 연민을. 그를 비챠라고, 불러줘야 했을까요? 그것은 용사의 의무였을까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누구에게?)
용사, 당신은 지금 어떤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나요.
에이단, 당신은 지금 눈 앞의 상대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뇌를 헤집습니다.
답해줄 사람 없는 질문들이 허공을 맴돕니다.
빅토르:(말 없이 긴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먼저 끝낸 것은 마왕이였고, 여전히 잠긴 목소리였지만 한결 뚜렷해진 음성이 어둠을 비집고 용사에게 전한다.) ...무엇을 그렇게 겁내고 있나요. 용사.
에이단 가렛: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동정해야 하나요? (시야가 흐립니다. 용사는 제 눈가가 뜨거운 것을 느꼈습니다. 이토록 쓰라린 감정이라니. 용사는 이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두렵습니다. 눈 앞의 당신은 용사를 두렵게 합니다. 죽음의 무게가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거만한 용사는 이 순간에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생이 스러질 것임을 확신합니다. 용사는 결말을 앞에 두고 고민합니다. 모두의 기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납니다. 자신은 운명같은 건 감당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이 괴로움은 누구를 향한 연민일까요.)
빅토르:무엇에, 무엇을, 왜 동정한다는 거예요, 에이단. (목소리는 곧 날카롭게 변한다. 자세히 뜯어본다면 안타까움, 자신을 향한 자책, 고민, 닿지 않는 기도.. 그런 것들이 녹아 서려있는 복잡한 표정을 한 채로. 촛불이 타닥 타는 소리와 둘의 불규칙한 숨소리가 복도의 벽에 부딪힌다.) 당신이 무엇을 이해한다고 멋대로 절 동정하나요. 이것도 모르겠다고 답하겠지요, 물론. (심호흡.) 하던 대로... 용사답게 행동하셔야죠. (오히려 황궁의 스승들 처럼 상대를 질책하는 말투.)
..해가 뜰 거예요.
분노 어린 목소리가 내리누르듯 말합니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그믐입니다.
등불의 빛만이 아른거리는 성 안.
빅토르:그 때 결말을 내죠, 용사.
마왕의 목소리는 담담합니다. 침울합니다. 다정합니다...
빅토르가 말을 잇습니다. 고개를 돌립니다. 시선의 방향을 알 수 없습니다.
빅토르:저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어째서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요?
에이단 가렛:당신은 무엇을 바라나요. 오늘 내내 당신은 이상했습니다. 그게 당신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내가 아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처럼. (눈가가 뜨겁습니다. 용사는 울고 있을까요? 머리가 어지러워 손에 쥔 물건을 꽉 쥐었습니다.) 비챠. 당신은 왜 나에게 그런 것을 알려주었나요? ......날 괴롭게 하기 위해서?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괴롭기 때문에? 말해요. 당신이 바라는 게 뭔지...... 말하란 말이야! (떨리는 목소리는 기어코 언성을 높이고야 말았습니다. 용사는 혼란스럽습니다. 용사는 이제 와서야 제가 알고 배우던 모든 것들, 그저 그려놓은 그림같은 완벽함은 그 밑바닥에 깔린 것들을 가리는 존재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용사는 그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었을까요? 기나긴 훈련은 정작 중요한 것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용사는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눈앞의 남자를 동정하고 있음을.)
빅토르:그야,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거든요. 이게 나니까. 이유가 어찌 되었던 당신은 마왕성으로 향했으며 들어왔고, 있는 그대로 맞이한 것 뿐인데. 혼란스러운 거 알아요. 알지. 황궁에서 가르쳤던 것과 모든 것이 다르니까. 이런 잘생기고 인간다운 마왕은 들어본 적도 없잖아요, 그쵸? 하하... (농담이랍시고 한 말인데 정작 본인은 제대로 웃는 꼴이 아니였다. 그 뒤로 이어진 한숨은 후회의 것이였을까, 한탄이였을까, 무지한 용사를 향한 것이였을까. 상대의 눈가가 빨갛게 된 건 진즉 눈치채었지만 언제나와 같이 콕 집어 부끄럼을 주진 않았다.) 목소리가 커요, 에이단. (속눈썹 긴 눈을 슬며시 감는다.) 내가 지금 여기서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빈틈을 만들어서 이후에 있을 전투를 이기기 위해 이렇게까지 행동한다고 말한다면 믿을래요? 그게 진실이던 아니던 그렇게 생각하는게 저에게도, 당신에게도 편할 텐데. 결국 우리는 싸워야만 해요. 정해진 운명의 수순처럼.
에이단 가렛:(무엇을 부정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것은 잘못됐습니다. 그는 차마 제가 밟아온 모든 길들을, 제게 걸린 모든 기대들을, 제가 맹목적으로 좇았던 운명이 잘못되었다고 의심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너무나도 인간적입니다. 용사는 오늘 하루 당신을 증오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용사는 비챠를 증오하기에 너무 많은 이들을 사랑해왔고, 당신은 증오받기엔 너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가요. 내가 배웠던 것처럼, 그렇게. 당신 편한 대로 목을 쳤으면 쉬웠을텐데. (용사는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이 제 눈가를 떠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당신의 말들이 저를 달래기 위한 포장임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정말 계략이라면, 당신은 오로지 용사를 모욕하기 위해 이 모든 비효율을 감내해낸 것이니까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운명과 가장 가까운 장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용사는 묻고 싶었습니다. 물어야만 했습니다.)
비챠....... 당신은 내 손에 죽고 싶은 건가요?
빅토르:...내가 실수했네요. 조금 우습더라도 양의 뿔을 베어 머리에 달고, 막 피에 젖은 모습을 보이면서 절대 제 모습을 짐작도 못 하고 당신이 용사인 그대로 생각하도록 두었어야 했는데. 그게 가장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쉬운 방법이였을 텐데... (거의 혼잣말의 형태를 띤 웅얼거림이 사라진다. 비챠, 당신은 내 손에 죽고 싶은 건가요. 하는 눈물 젖은 목소리에 어깨가 움찔 떨린다. 얼굴이 굳는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간의 긴 나날들을 머릿속으로만 회상하다가, 눈동자를 아래로 내린다.) 예. 죽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렇지만 죽지 않을 거에요, 당신을 죽일 테니까요. 죽여야만 해요. (그게, 당신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 테니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그는 고개를 설레 젓는다. 너무 말이 많았고 많은 것을 보이고 말았다. 이젠 돌려보내야만 했다.)
돌아가세요. 방으로. 이게 마지막 경고입니다, 에이단 가렛. 용사여.
에이단 가렛:(용사는 손톱에 찔린 손바닥에서 피가 나도록 주먹을 쥐었습니다. 왜 당신도, 용사도 괴로운 걸까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목전에 두고, 용사는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마왕도 자신도 물러설 수 없는 기로에 섰습니다. 마왕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자신 또한 마왕을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아이러니합니다. 그 또한 자신 이전에 서로를 위해서임이라면, 운명은 어째서 이렇게 가혹한 걸까요. 천천히 뒤돌아서며, 용사는 등 뒤에서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습니다. 태양이 떠오르길 기다리면서요.)
당신은 방으로 돌아옵니다.
새벽은 아스라히 밝아지려 하는데. 등잔의 불은 여전히 미약하기만 합니다.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적은 기분입니다.
문득,
KP:에이단, 지능 판정
에이단 가렛: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의문점이 밀려옵니다.
왜 세상의 끝이 이곳이라고 규정되었지.
마물들이 한 번이라도 여타 제국의 사람들을 공격한 적이 있나?
마물로 인한 피해를 들은 적이 있나?
마왕은 꼭 나를 아는 것 같았다.
왜 그 오랜 세월 동안, 용사는 나 하나 뿐이었나?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태어났다면,
마왕은?
수첩을 쥡니다.
등불에 비춰봅니다.
...아주 오래된 종이냄새.
왜 나와 당신이 선택되었는지의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운이 없어서라고.
.....
마왕성은 너무 외로워. 아무도 없어.
.....
축복받는 용사.
.....
부러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부러워하게 돼.
.....
한 사람은 죽여 마왕이 되고 한 사람은 죽어 용사로 태어난다. 용사는 잊고 마왕은 기억한다.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하지? 왜 하필 내가 그걸 물어봤을까. 왜 나만이 이걸 알고 있어 괴로울까. 왜 내가 당신을 두고…… 나는…… 나는……
.....
차라리 이러지 말았어야지. 자꾸 화가 나. 억울해. 몇 백 번의 삶을 이런 식으로 죽고 죽이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 지긋지긋한 교환되는 운명. 이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 해도, 내가 용사가 되고 당신이 마왕이 되는 것도, 내가 마왕이 되고 당신이 용사가 되는 것도 너무 싫어. 우리가 죽고 죽어야만 모든 평화가 유지된다는 게 끔찍해. 그러나, 그러나……
.....
나 당신이 불쌍해. 나 내가 불쌍해요. 에이단.
.....
에이단, 당신이 축복받는 용사가 아니라면. 당신이 마왕이 된다면.
.....
에이단.
.....
이건 영원한 저주예요.
.....
에이단.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태어난다면,
마왕은?
KP:(SANC 1/1d3)
에이단 가렛:
SAN Roll
기준치:
40/20/8
굴림:
45
판정결과:
실패
KP:1d3 굴려주세요.
에이단 가렛:
rolling 1d3
(
1
)
=
1
KP:이성치 1 감소.
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습니다.
반대로 무언가로 꽉 차 버린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도구.
용사와 마왕이라 이름 붙여진 연극의 배우.
결코 무대 밖으로 내려갈 수 없는 인형극.
옛날 옛날에, 어떤 용사가 있었습니다.
용사의 사명은 마왕을 무찌르는 것이었고, 그 용사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눈을 들면 동이 터오고 있습니다.
햇빛이 눈부시고, 찬연하게 비쳐오는 빛줄기를 따라서 시선 또한 따라갑니다.
옆에 놓인 당신의 검을 스치고, 그 눈길 끝에,
어느새 열린 문 앞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마왕이 서 있습니다.
KP:에이단, 관찰 판정.
에이단 가렛:(에이단 가렛은 숨을 죽였다. 눈물은 어느새 메말라있었다. 수첩을 읽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꽤 밝아진 바깥에서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결전의 시간이다. 에이단 가렛은 무언가를 결심했다. 재미있게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몰랐다. 그는 그저 이곳에 온 이후로 내내 계속되었던 불안과 의심이 걷히고, 어떠한 확신이 그곳에 자리잡았음을 인지했을 뿐이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그의 얼굴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었던가요.
에이단 가렛:비챠. (제 귀에 듣기에도 버석한 목소리가 울렸다. 역광에 당신의 얼굴은 확인할 수 없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너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지?) 아직도 죽고 싶나요?
빅토르:...(열린 문의 틀에 등을 기댄 자세. 오른쪽을 보면 가느다랗게 빛나는 은색의 레이피어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세를 바로잡으며 한 발 다가선다. 가식도, 과한 감정도 없는 덤덤한 표정.) 저는 언제나 죽고 싶었어요. 동시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끝없이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순 없으니 차라리 죽어 용사로 다시 태어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20년 동안이라도 따뜻한 황궁 안에서 자라고 싶다고도요. 그치만 너무 마음 편한 소리겠죠. (검을 들어 끝을 아슬하게 겨눈다.) 검을 들어요, 에이단.
에이단 가렛:(흐리게 웃었다. 당신다운 검이다. 우아하고, 화려하고. 밝게 빛나는. 피를 묻히는 것보단...... 찬란한 햇살 아래서 부서지는 빛의 파편이 더 어울리는. 당신은 대체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우리는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이게 우리의 세상이라면, 이렇게 가혹한 게 우리의 세상이라면....... 당신에게 다정하지 못한 세상은 지킬 가치가 있을까. 에이단 가렛은 제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이상한 일이죠, 비챠. 당신은 왜 그렇게 다정한 선택을 할까요. 그렇게 괴로운데도. 당신은 왜....... 다정하길 선택할까. (시선이 검의 끝에 닿았다. 그 너머론 사악한 마왕이 자리해야 하는데.)
빅토르:이번에 죽으면 저는 편하게도 용사로써 태어나 20년동안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렇다면.. 그동안의 우리가 함께 죽고 죽이며 힘든 생을 서로의 위로로 버텨왔던 순간들은 나만 기억하고 있어요. 나만. 내가 죽으면 이 기억은 영영 사라지고 다시 의미 없는 운명의 체스말이 될 테니까, 그것만큼은 정말 버틸 수 없으니까. 그 기억은 영원히 마왕 빅토르로써 간직한 채 지낼 거에요. 어서, 제발. 검을 들어요.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용사와 마왕으로써 싸우는 거예요, 어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니도록 흔들리는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운다. 역광을 받는 자신과 햇빛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에이단. 퍽 어울리는 모습이였다. 수첩을 들킨 건 수백 수천번의 반복 속에서 처음이였으나 결국엔 다시 언제나처럼 검을 맞댈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20년만의 재회에 반가움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또한 방심했던 자신의 실수 때문에 에이단은 모든 것을 알아버렸지만 그렇다고 나약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네가 검을 들고, 전투의 시작을 고하길 바라는 의지 굳건한 눈동자에 빛이 든다.)
에이단 가렛:(제게 겨눠진 검끝에 손가락을 댔다. 날카로운 면에 작게 핏방울이 맺힌다. 찬 금속을 쓸다가, 힘을 주어 천천히 내렸다.) 있죠, 나는....... 용사로 태어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명을 위해 태어났다는 게.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살아가야 할 동기를 찾는 데 평생을 써요. 그러나 용사인 나는 내게 정해진 길을 가면 되는 거니까요. 과분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을지 때로 고민하기도 했어요....... (몇 바퀴째 돌아가는 것일지 모를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서 당신이 기댈 곳은 기억 뿐이었겠지. 다정한 마왕은 언제까지고 제게 사실을 숨기고, 혼자 그 모든 기억을 떠안은 채 새로운 용사를 맞이했을 것이다. 말을 고르고 골랐다.) 그렇지만. 그건 기회의 박탈일 뿐이야. 우리는 고민할 기회를 잃었어요. 세상이라는 건 꼭 지켜야 하나요? 당신만이 괴로운 이곳에서,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정한 당신은 나를 베려고 하겠지. 세상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나는....... 당신이 체스판에서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필요하다면 그걸 부숴서라도. (그도 제 검을 들었다. 레이피어의 날을 꾹 쥐자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있지.... 우리 그냥. 그냥.... 이대로 있을까요? 세상 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당신은 처음 보는 것처럼 정원을 구경시켜주고, 나는 분홍 장미같은 건 처음 보는 것처럼 예쁘다고 칭찬해주는거야. 식사를 하면서 잡담을 나누고, 샐러드만 먹고 있으면 이것도 저것도 먹어보라고 권하고. 나는 맛있다고 대답하고. 밤에는 자기 전까지 앉아서 나와 당신에 대해 듣다가, 잠들때까지 기다리는거야. 아침이 온다는 사실을 겁내지 않고. 그렇게 할래요?
(제 검을 세워 당신의 목에 댔다. 동시에 레이피어의 검날을 꾹 쥐어 제 배에 가져다 댔다. 당신이 다가온다면, 둘 다 찔릴 것이다. 대답을 바라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해줘요, 비챠. 당신을 위해서, 날 위해서......
(에이단은 할 말이 더 남은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이내 미소로 마무리했다. 선택은 비챠의 것이었다. 적어도 그것은 비챠에게 주어야만 했다. 에이단은 그럴 의무가 있었다. 그는 그저, 비챠가 세상 대신 스스로를 선택해주길 바랐다. 그뿐이었다.)
빅토르:(검신에 맺힌 빨간 인간의 피에 움찔, 몸이 떨리는 것이 검을 타고 전해진다. 너는 어쩜 이렇게 끝까지 용사다울까.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보아온 모습이지만 매번 다르고도 한결같았던 에이단. 맹목적이다가도, 눈 앞에 정의 조각이라도 보이면 그것에 쉽게 혼동하고. 만약 우리가 평범한 제국의 사람들이였다면 난 그가 혹여 사기라도 당하지 않도록 옆에서 주의를 주었을 것 같다는 아주 멀고 먼 상상이 뇌 어딘가에서 흐른다. 곧 끊긴 필름처럼 망상은 그친다. 굳건한 표정의 그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하기엔 이 순간의 공기가 너무나 무거웠다.) 제가 기억을 잃은 용사였다면 저도 당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제국의 기대와 의무를 짊어지며 평생의 목표 하나를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사소하게 이곳 저곳 닮았으니까요. 아하하... 손 덧날 텐데. (이번 20년 동안은 한 번도 제대로 쓰지 못 한 검이였지만 사람을 베기엔 충분한 날카로움이였다. 그의 손에서 송골송골 방울진 피가 흐르는 것을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허탈한 웃음소리를 흘린다.) 우리가 서로 죽고 죽여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그 때도 우리는 버티기 힘들어했고, 당신은 이제 이런 짓을 그만두고 싶다고... 그래요. 그렇게 똑같은 말투로 체스판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말했구요. 엊그제같네. (슬며시 미소지었던 얼굴은 오래 유지되지 못 했다.) 우리가 아니면 저들은 누가 보살펴요. 그래도... 다들 삶을 사는데... 그래도... 당신에겐 너무 미안한 소리지만 우리 둘만 희생하면 수백의 제국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 내가 너무 미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지만요... 에이단... (확신 없는 말투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이미 상대의 말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로, 목에 들이밀어진 네 아론다이트에도 놀람 없이 받아들이는 듯 했으니까.)
(가만히 상상해본다. 매일매일을 공허함 속에서 괴로워하지 않고, 답신 없는 무의미한 기도를 하지 않으며, 말을 하면 받아줄 사람이 있는 다음 날을. 우리의 회전목마가 강제로 멈춘 탓에 제국의 사람들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 할지도 모른다. ...어짜피 얼굴도 본 적 없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고통받을 이유가 있나. 우리도 결국 용사와 마왕을 떠나서 그저 인간인데. 먹고 사는 인간에 불과한데. 운이 안 좋다는 이유로 그저 끝없이 죽고 죽이는 불행 속에서 고통받는건 이미 충분했다. 에이단의 음성이 더없이 달콤하게 귀를 맴돌았다.) 날...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정말 우리가 노선을 벗어나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당장 운명을 거스르는 순간 우리에게도 어떤 위험이 닥칠 줄은 몰랐지만, 이후에도 다시 똑같은 얼굴로 새롭게 자신을 경계하는 용사를 맞이할 자신은 없었으니. 그렇게 되면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이 고통을 잊고 편안해지기 위해 서로를 동시에 찌르거나, 하루 하루를 평범한 인간처럼 지내거나. 그는 비챠가 스스로 선택하길 바랬지만 이미 위대한 존재에 의해 선택권을 잃어본 그는 할 수 없었다. 눈 앞의 용사를 본다. 미소는 오랜만이네. 그도 따라 편안히 미소짓는다. 눈으로 우리의 미래와 진정한 용사의 선택을 물었다.)
에이단 가렛:세상이 하루만에 끝나버린대도 좋아. 우리에게 일 초도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좋아. 그러면 그것대로 당신에겐 안식이 주어지겠지.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해요, 비챠. 이십년간 그렇도록 배워왔으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사랑한 세상을 위해서, 우리는 이 장의 막을 내리는 거야. 고통 위에서만 타인의 행복이 설 수 있다면, 그런 행복같은 건 없어져도 좋아요.
용사는 선택했어요, 비챠. 나는 당신을 선택했어. 이대로 있자. 내가 당신을 알고, 당신이 나를 안다는 사실만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우리가 있다면 그것으로 족해요. ......제발요. (자색 눈동자가 일렁였다. 에이단은 울지 않을 것이다. 마왕의 모습을 하나하나 새기려는 듯 곧게 바라보는 시선이 벽안을 마주했다. 다정한 당신은 그렇기에 좋은 장기말일 것이다. 몇 백년의 괴로움. 그보다는 아주 조금 짧았을 고독. 나는 당신을 벨 수 없다. 그러나 당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에이단은 당신이 조금 더 버텨주길 바랐다. 조금만 더 버텨서, 어쩌면 올지도 모르는 진정한 행복을 기다려주길. 그의 옆에서. 두려울지언정, 그제서야 비로소, 그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살아가요. 그냥. (순간, 용사는 자신의 검을 옆으로 던졌다. 당신의 레이피어도 잡아서 힘을 주자, 순간 힘이 풀린 당신의 검도 바닥에 떨어졌다. 피가 흐르는 손으로 용사는 마왕의 손을 잡았다. 멀쩡한 손으로는 당신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겼다. 품에 들어차는 온기에, 용사는 조금 슬펐다. 그는 앞으로도 마왕이 홀로 보낸 세월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몇 백 년어치의 고독을, 괴로움을, 바람을. 용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곁에 있는 것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기를 바랐다. 다정한 마왕이 행복해지길, 바랐다.)
빅토르:에이단...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요. 내가 용사였을 땐 그런 말 하는 방법 같은건 배운 적 없는데. 하하... 진짜, 그렇게 말하면 다 던지고 고개를 끄덕여버릴 것만 같잖아요... (축축하게 젖어 일그러진 말끝이 햇볕에 말라가는 것 처럼 서서히 제 목소리를 되찾는다. 고통 위에서만 타인의 행복이 설 수 있다면, 그런 행복같은 건 없어져도 괜찮다는 말에 가슴이 울린다. 그런 말이 듣고싶었어. 평생. 드디어 설 자리를 찾은 것이다. 마왕성은 마왕성이 아니라 곧 우리의 성이 되겠지. 안 쓰는 방은 정리하고, 우리가 흘렸던 피로 칠갑이 된 기도실은 문을 닫아버려야겠다. 홀의 정원도 같이 가꾸고....) 나도 이 세상을 사랑해요. 나에게도 언젠가 20년간 배웠을 때가 있으니까요. 잘 알아. 그렇기에, 예. 당신의 말이 옳아요. 우리의 인생 정도는 이제 우리가 정하고 싶어.
...(감정을 추스르기 위한 짧은 침묵, 숨.) 부탁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이미 설득당했어. 그런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보지 않아도 저는 여기 있을 거예요. 에이단 가렛과 함께. (푸른색 눈동자가 일렁였다. 비챠는 울지 않을 것이다. 두 장기말이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판을 벗어날 때, 세상은 변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새로 써나갈 것이다. 이후에도 흔들릴 만한 일이 생긴다면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버틸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넓은 마왕성은, 이전 에이단이 사용했던 바로 이 방에서 새로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그냥 살아갑시다. 살아가요. (각기 다른 금속이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때렸지만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햇빛에 비추어져 축복을 받는 성스러운 모습의 상대만을 눈에 담았다. 타인의 힘에 끌려 중력으로 잡아당겨지듯 거리가 좁혀지고, 정말 오랜만에 인간의 온기를 느꼈다. 너무나도 외로웠다.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모든 고통들을 견디고 또 견뎌왔을 때 비로소 찾아왔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깃든다....) 이게 우리의 선택이죠.